히즈빈스 언론자료
2021-01-29
[뉴스앤조이-박요셉 간사] 노동은 생계·이윤·가치 등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는 활동이다. 그러나 때로는 노동 그 자체가 목적이 된다.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사회적 존엄과 소속감을 누릴 수 있다. 반대로 고용 시장에서 번번히 배제될 때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박탈감을 느낀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 채 탈락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는 삶. 취업 취약 계층인 정신장애인들이 마주하는 현실이다.
히즈빈스가 탄생한 배경이 여기에 있다. 13년 전, 정신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 20대 청년들이 '맨땅에 헤딩하듯' 회사를 차렸다. 2008년 경북 포항에 만들어진 향기내는사람들(임정택·이민복 공동대표)은 그렇게 출발했다.
자본이나 경력은 없었지만 투지와 열정은 충만했다. 전국 유명 바리스타를 찾아가 커피를 배우고 대학 은사들과 지역 기업에 투자·지원을 요청했다. 그 결과 모교와 포스코의 지원을 받아 이듬해 한동대에 1호점을 열고 정신장애인 바리스타 4명을 고용했다.
히즈빈스는 정신장애인을 둘러싼 사회적 편견에 도전한다. 편견은 통계에 나타난다. 한국장애인고용공단에서 조사한 '2019년 국내 기업체 장애인 고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기업에서 고용한 장애인 상시 근로자 중 정신장애인 고용률은 1.4%로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낮다. 히즈빈스는 직영·가맹점 모두 장애인 바리스타를 고용한다. 전체 직원의 약 60%가 장애인이다.
이들의 경영 방식은 상식을 뒤집는다. 회사가 직무 교육과 인사관리에 많은 비용을 투자하고, 바리스타 2명만 고용해도 되는 매장에 바리스타 4~5명을 투입한다. 정신 질환, 조현병 등 정신장애가 있는 직원의 컨디션을 고려한 조치다. 이러한 방식은 최소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거두어야 할 기업 입장에서는 비효율적일 수 있다. 하지만 히즈빈스는 어려움 속에서 꿋꿋이 자라 지금은 전국 커피 전문점으로 성장했다.
이민복 대표를 1월 14일 서울 성동구 히즈빈스 성수점에서 만났다. 코로나19로 불어닥친 한파를 이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넓은 테이블과 의자들이 주인을 잃은 듯 쓸쓸하게 방치돼 있었다(정부는 1월 18일부터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를 유지하면서 조건부로 카페 이용을 허가했다).
히즈빈스는 장애인들을 고용해 커피 전문가로 양성한다. 사진 제공 향기내는사람들
바리스타 100% 장애인 고용
일반 기업보다 4배 높은 근속률
고용 후에도 안정적으로 일하도록
다각적 지지 프로그램 운영
- 코로나19로 음식점·카페가 많이 힘들다고 들었어요. 히즈빈스는 요즘 좀 어떤가요.
"어렵죠. 요즘은 정말 자다가도 깨요. 전국에 히즈빈스 매장이 16개 있는데, 잘 아시겠지만 지금 한 달째 카페가 비어 있어요. 이곳 성수점은 바리스타 5명과 비장애인 매니저 2명이 근무해요. 일일 평균 매출이 40~50만원, 많이 나올 때는 60~70만 원이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하루에 많이 나와 봐야 10만 원, 더 적을 땐 만 원이거든요.
이전에는 서울·경기권만 사회적 거리 두기 2.5단계가 시행돼 일부만 타격을 받았는데, 지금은 전국이 2.5단계잖아요. 매출이 반의 반 토막이에요…. 월급날이 다가오면, 줄 수 있을지 걱정부터 앞서요. 직원들 주고 나면 대표인 저는 제때 못 받고 1~2주일 늦게 받아요. 올해는 어쨌든 버티는 게 목표입니다.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시 영업할 수 있으니까요."
- 시작부터 무거운 주제를 꺼냈네요.
"괜찮습니다. 우리가 카페만 했다면 정말 힘들었을 텐데, 그나마 감사한 건 지난해 제조 부문(캡슐 커피, 콜드 브루 등) 매출이 좀 나와서 버틸 수 있었어요."
- 히즈빈스에서 일하는 장애인 바리스타는 몇 분인가요.
"히즈빈스를 통해 월급 받는 직원이 100명인데, 그중 바리스타는 100% 장애인 선생님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바리스타는 직영·가맹점 통틀어 약 60명인데, 대부분 정신장애가 있는 분이고 발달·청각·지적장애를 지닌 선생님도 계세요."
히즈빈스에서는 장애인 바리스타를 모두 '장애인 선생님'이라고 부른다. 이들을 치료나 수혜 대상으로 보지 않고 서로 동등한 동료로 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 국내 정신장애인 고용률이 전체 고용된 장애인 중 겨우 1.4%라는 통계를 봤어요. 유독 정신장애인 고용률이 낮은 이유가 있나요.
"1.4%면 장애인 중에서도 가장 낮은 비율이에요. 한편으로는 고개가 끄덕여져요. TV에 조현병, 정신분열증을 겪은 사람들 뉴스가 종종 나오잖아요.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거예요. 이분들을 단지 감정이 불안하고 종잡을 수 없는, 컨트롤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인식하니까요. 특별한 사명감이나 정신장애에 대한 이해가 있지 않다면, 기업들도 채용이 쉽지 않은 거죠. 이분들은 보험 가입도 잘 안 돼요.
어렵게 취업해도 근속이 문제예요. 국내 정신장애인이 3개월 이상 직업을 유지하는 비율은 겨우 18.3%거든요(중앙정신보건지원단, 2014). 입사 후 3개월이 지나면 10명 중 2명만 회사에 남는다는 말이죠. 사실 일하다 보면 누구나 힘들거나 스트레스 받을 때가 있잖아요. 그러다 보면 증상이 악화되고 결국 어렵게 구한 일자리를 관두게 되는 거죠. 회사도 직원이 조금만 이상 증세를 보이면 바로 해고하고요."
-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네요. 히즈빈스의 경우는 어떤가요.
"저희는 3개월 이상 근속 비율이 90%(OECD는 평균 50%)예요. 바리스타 중 다수가 5년 이상 근무했고, 10년째 일하는 분도 계세요. 가공식품을 생산하는 제조 사업 본부 로스팅 총괄 책임자도 바리스타로 경력을 시작한 장애인 선생님이에요."
- 90%면 18.3%와 차이가 많이 나네요. 비결이 있나요.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아시다시피 선생님들을 위한 일자리 제공이에요. 그런데 고용한다고 그게 끝이 아니잖아요.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야죠. 그래서 직무 교육에 신경을 썼어요. 아무래도 이분들이 실무에 투입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요. 기업 가치부터 실습까지 8단계 교육과정과 가상현실(VR) 프로그램, 레시피 교육용 게임들을 개발했어요.
두 번째 목표는 선생님들을 전문가로 양성하는 일이에요. 전문가가 되려면 누구나 시간이 필요하죠. 일반 기업에서 장애인 선생님들이 장기간 근무하지 못하는 건 구조적인 이유도 있어요. 기업에 장애인 직원이 많지 않으니 인사 담당자가 관심을 갖기 어려워요. 전문가가 따로 상주하는 것도 아니고요. 그러니까 선생님들이 그만둔다고 하면 그냥 그러라고 하고, 이상 증세를 보이면 계약을 연장하지 않죠. 어차피 들어오려고 바깥에 줄 서 있는 사람 많으니까.
저희는 다각적 지지 시스템이라는 제도를 만들었어요. 여러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 선생님 한 분을 지지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매장에서는 매니저가 선생님을 케어하고, 히즈빈스 본사 담당자, 장애인 선배, 지역 사회복지사, 정신과 의사, 장애인 사회복지 기관 동료 등을 연결해 줘요. 선생님들이 일을 포기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거죠. 일하면서 얻는 스트레스, 부정적인 감정, 동료와의 갈등이나 오해 등은 대화를 나누거나 함께 여가 활동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거든요."
히즈빈스는 직원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다각적 지지 시스템을 운영한다. 사진 제공 향기내는사람들
- 고용에 그치지 않고 선생님들이 일에 능숙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모습이 마치 농사를 짓는 것 같네요. 씨를 뿌린다고 농작물이 알아서 자라지 않잖아요.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우도록 물과 거름을 주고, 싹이 시들지 않도록 계속 관리해 줘야 하잖아요.
"저희는 성경의 포도원 주인을 떠올려요.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 품꾼 비유가 나오잖아요. 주인은 오전·점심·오후 심지어 저녁에 고용한 사람에게 모두 똑같이 품삯을 줘요. 포도원 주인을 보고 있으면, 이 사람은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에요. 월급을 주려고 포도원을 운영하는 거죠. 저희도 그래요. 우리가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는 것보다 일자리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한 목적이에요."
히즈빈스는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장애인 고용을 위한 기업 컨설팅을 진행한다. 국내 50인 이상 민간 기업은 장애인고용촉진법에 따라 장애인을 의무적으로 고용해야 한다. 정부는 2024년까지 민간 기업 의무 고용률을 전 직원의 3.4%까지 올리겠다고 밝혔지만, 기업의 절반 이상이 현재 기준인 3.1%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의무 고용률을 지키지 않는 기업(100인 이상)은 부담금을 내야 한다. 히즈빈스는 이런 기업을 찾아가 장애인 고용을 권하고, 가맹 형태로 카페 매장을 내게 한다. 히즈빈스 롯데건설둔촌점·판교와디즈점·공주애터미점·포항세명기독병원점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기업이 이미 카페를 운영하고 있거나 다른 형태 일자리를 원하면 그에 맞는 솔루션을 제공한다.
- 어떻게 정신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를 생각하게 됐나요.
"임정택 대표님이 창업을 고민할 때, 은사이신 한동대 정숙희 교수님과 여러 차례 상의했어요. 그때 임 대표님은 정 교수님이 센터장으로 있는 브솔시냇가라는 정신 재활 센터에서 정신장애인 선생님들과 2달 정도 시간을 보냈어요. 하루는 그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냐고 물으니까, '일자리'래요. 돈을 못 버니 연애도 못하고 가정도 이루기 어렵고 다른 활동을 하지 못하니까 미래 자체를 꿈꾸기 어렵다는 거였죠.
이분들은 정신장애를 갖고 태어난 게 아니에요. 각자 사회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다가 힘든 일을 겪으면서 정신장애를 얻게 된 거죠. 학생·직장인·주부, 대기업 임원 출신도 있어요. 갑자기 얻은 정신장애로 사회에서 쓸모없는 존재가 된 것 같으니까 자괴감이 크죠. 센터에는 20여 분이 계셨는데 그중 한 분만 일을 했대요. 자판기에 종이컵을 채워 넣는 일인데, 일한다는 것만으로 모두가 부러워했대요. 그때 임 대표님이 결심했죠. 이분들이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하자고. 그 시작이 바로 일자리고요."
-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유명한 말이 떠오르네요. "노동 없는 삶은 부패한다"고.
"일자리 제공과 전문가 양성 말고도 저희가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가 있어요. 히즈빈스를 선생님들의 삶이 회복되는 공간으로 만드는 거예요.
한동대점에 신만철 선생님이라는 분이 계셨어요. 8년 정도 근무하셨는데요. 이분이 어느 날 특별한 경험을 해요. 한 대학생이 커피를 주문해서 매니저가 만들려고 하는데, 그 학생이 신 선생님을 지목한 거예요. 신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커피가 맛있다면서요. 그날 선생님 기분이 어땠을까요. 아주 '업'됐죠.
선생님 나이가 40대 초반이었어요. 이제껏 결혼도 못하고 경제활동 없이 집에서만 지내고 있다는 자괴감이 컸는데, 한 대학생의 칭찬 한마디로 삶이 180도 바뀌었어요. 선생님은 그날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이었대요. 이후 증세가 호전되고 약 복용량도 줄기 시작했어요. 병원에서는 기적이래요. 지금은 사회복지사가 되셔서 다른 어려운 분들을 돕고 계세요."
- 우와, 정말 꿈같은 이야기네요.
"이전에는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라고 하면 어딘가 격리돼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일이 많았어요. 히즈빈스에서는 선생님들이 직접 손님을 응대해요. 이런 경험만으로도 선생님은 자신이 사회 일원이 된다는 소속감을 가져요.
히즈빈스가 장애인 가정에서는 꿈의 기업이래요. 동료들이 장애인이고, 회사가 이분들에 대한 이해도가 깊으니까요. 입사 이후 삶이 회복하고 증세도 나아진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부모님들에게 매일같이 연락이 와요. 우리 자녀도 일할 수 있게 해 달라고요. 이분들을 위해서라도 히즈빈스가 앞으로 더 성장해야 해요."
이민복 대표가 히즈빈스 로고를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의 원두(His beans)라는 의미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청년 시절, 김동호 목사 '청부론' 영향
걸인 보고 '사회적 약자 돕겠다' 결심
유망한 외국계 컨설팅 대표에서
사회적 기업 영업이사로
이민복 대표는 지난해 1월 마케팅 및 서울·경기 영업이사로 히즈빈스에 입사했다. 이후 반년 만에 공동대표이사가 됐다. 이 대표는 컨설팅 회사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직전까지 세계적인 제안·수주 전문 컨설팅 기업의 한국지사 대표를 맡았다.
청년 시절, 김동호 목사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청렴한 부자가 돼 어려운 이들을 돕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 잘나가는 컨설팅 기업 대표를 관두고 히즈빈스로 넘어온 것도 청년 시절 품은 비전 때문이다.
- 사람들을 도우며 살고 싶으셨다고요.
"원래는 국어 교사나 소설가가 되고 싶었어요. 대학에 갈 때 국문과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지는 걸 보고 이게 내 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저는 부산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는데요. 대학 입학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에 왔을 때 충격적인 모습을 봤어요. 남루한 옷을 입은 분이 노상에 앉아 찬송가를 크게 틀어 놓고 구걸을 하더라고요. 생경한 장면이었어요. 부산에서는 걸인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거든요. 근데 사람들이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는 게 더 충격이었어요.
오프라 윈프리가 이런 말을 했대요. '남보다 더 가졌다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사명이다', '남보다 아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니라 사명이다'라고요. 저는 그 걸인의 모습을 보는 것보다도, 지나가는 사람들이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게 더 힘들었어요. 그때부터 앞으로 어떻게 살지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회기역 앞에서 자취하면서 동안교회에 출석했는데, 당시 청년부를 담당했던 김동호 목사님 설교를 좋아했어요. 그분 말씀이 제 비전에 영향을 줬어요. 5000명이 먹을 것을 독식하지 않고 나눠 먹는 부자·CEO가 돼 소외받는 사람을 위해 재단을 만들겠다는 꿈을 갖게 됐죠. 경영학과에 간 것도 그 이유예요."
- 컨설팅 회사 대표를 역임하셨잖아요. 커리어 욕심도 있었을 것 같고, 부자가 되려면 유망한 기업으로 옮기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왜 하필 히즈빈스로 오셨나요.
"제가 있던 회사가 '쉬플리'라는 국제 컨설팅 기업과 함께 2008년 쉬플리의 한국지사를 만들었어요. 저를 포함해 직원 3명이 시작했는데, 그때 대표님께 10년만 일하고 사회적 기업으로 가겠다고 말씀을 드렸어요. 관두기 직전에는 직원수가 50명이 될 정도로 회사가 성장했어요. 저는 대표로 재직 중이었고요. 하지만 근무한 지 10년째 되는 해 약속대로 관뒀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았거든요.
하나님께서 매 순간 제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상기해 줬던 것 같아요. 뉴스나 소셜미디어에 올라오는 어려운 사람들 소식을 보면, 나는 지금 여기서 무슨 일을 하고 있나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럴 때마다 지금은 평범한 직장인의 모습을 하고 있어도, 청년 시절 꿈을 내려놓은 건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없는 게 아냐', '지금은 앞으로 다가올 시간을 위해 준비하는 과정이야'라고 스스로를 다독였죠.
임 대표님은 다음 스텝을 고민하던 중에 만나게 됐어요. 비영리 단체, 사회 혁신 기업 등을 전문으로 컨설팅하는 MYSC의 제안으로 여러 사회적 기업 대표들 앞에서 비즈니스 특강을 했었는데요. 임 대표님이 제일 열심히 들으셨어요. 이후 대표님께 같이 일하고 싶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하시더라고요."
- 원하는 일을 하게 되니 어떠세요. 만족하시나요.
"사실 입사가 결정되고 난 뒤 연봉 협상 때문에 조금 흔들렸어요. 이전 회사에서 대표였으니까 급여를 좀 받았죠. 대기업에서 일하는 친구들보다 더 많았으니까요. 사회적 기업이라는 점을 감안해 제 나름대로 연봉을 많이 줄여서 제안했는데, 임 대표님이 난감해하시더라고요. 그러면서 자신의 급여 명세서를 조심스레 보여 주셨는데 좀 놀랐어요. 그래도 직원이 100명 가까이 되고 매장도 16개인 회사 대표님이신데, 직원들과 별 차이가 없더라고요. 대단하신 거죠. 이게 사회적 기업 대표의 모습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어요.
지금도 신기한 게 저는 아이도 둘이고 받던 월급이 있으니 생활이 안 될 줄 알았는데, 하니까 또 되더라고요. 퇴직금이 있어서 그런가.(웃음)
지금은 너무 행복해요. 소명으로 품고 있던 일을 하게 되니까, 이전만큼 풍족하지는 않아도 이런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저 역시 매일매일 보람차기만 한 건 아니에요. 좋아하는 일도 업으로 삼으면 힘들고 싫을 때가 있다고 하잖아요. 그럼에도 일의 이유와 목적이 분명한 삶과 그렇지 않은 삶은 확연히 차이가 있어요."
김동호 목사의 청부론은 지금은 시들었지만 한때 교계에서는 뜨거운 감자였다. 지지하는 그룹과 반대하는 이들이 기고·인터뷰·대담 등으로 활발한 논쟁을 펼쳤다. 여기서 청부론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청렴한 부자가 되고 싶었던 이 대표는 아이러니하게도 부자가 되는 길을 포기했다.
- 장애인들과 함께 일해 본 적이 있으신가요. 비장애인으로 살면서 갖게 된 편견을 발견한 적이 있다면요.
"저는 선생님들에 대한 이해가 많지 않았어요. 사회에서는 만날 기회가 없으니까 너무 무지했죠. 그런데 히즈빈스에서 일하면서 새로 알게 된 건, 이분들도 우리와 똑같은 존재라는 사실이에요. 똑같은 감정을 느끼고 똑같은 고민을 해요.
회사에서 일하면 어떤 게 좋으냐고 여쭤 보면, 부모님 용돈 드리는 게 좋으시대요. 마치 우리들이 사회생활 시작하고 첫 월급 받을 때 느끼는 그런 감정이죠. 가족들이나 친구들한테 치킨 사 주고 야식 쏘는 게 무척 흥분되는 일이라는 거예요. 남는 돈으로는 친구 만나고 연애하고 결혼 생각도 하고 재테크도 알아보면서 미래를 준비하는 모습을 보면 그런 생각을 해요. '아 우리와 똑같구나.'"
- 미래를 꿈꾸는 선생님들의 모습을 보면서 대표로서 어깨가 무거울 거 같아요. 지금까지 히즈빈스가 이렇게 성장한 게 놀랍기도 하고요.
"사회적 기업은 가치를 움켜쥐는 동시에 이윤을 내야 하니까 정말 어려워요. 두 마리 토끼를 쫓아야 하니까요. 저희는 지금 계시는 선생님들을 책임지면서 앞서 말씀드린 3개의 목표(일자리 제공, 전문가 양성, 삶의 회복)를 이뤄 나가야 하니까 더욱 노력해야 해요.
우아한형제들 김봉진 대표님이 이런 말을 했어요. 배달의민족은 직원들이 행복한 회사를 만들기 위해 조직 문화 개선에 힘썼기 때문에, 배달의민족이 성공해야 한다고요. 이렇게 해도 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한다는 거죠.
히즈빈스도 성공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요. 더 많은 분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선생님들의 삶이 회복하려면 히즈빈스가 계속 성장해야 해요. 기업들에게도 장애인 고용 솔루션을 제공할 때 이런 모델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하고요. 직원들에게 우리가 프로가 돼 일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편이에요. 저희가 내뱉은 말들이 단순히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지 않게 하려면, 회사가 기업으로서의 경쟁력을 갖춰야 하니까요."
이 대표는 히즈빈스의 의미가 이 이미지에 잘 담겨 있다고 했다. 사진 출처 Angus Maguire
인터뷰가 끝난 뒤 얼마 안 돼 이 대표에게 이메일이 날아왔다. 히즈빈스의 의미를 글과 이미지로 정리해 봤다는 내용이었다. 첨부 이미지에는 두 장면이 그려져 있었는데, 키가 서로 다른 세 사람이 담장 너머로 야구 경기를 관람하는 모습이다.
첫 번째 장면에서 세 사람은 똑같은 받침대 위에 섰다. 키가 작은 한 사람은 담이 높아 야구 경기를 볼 수 없었다. 두 번째 장면에서는 키 큰 사람의 받침대가 키가 작은 사람 받침대 위로 옮겨져 있었다. 그러자 모두가 야구 경기를 볼 수 있었다. 이 대표는 메일에 이렇게 썼다.
"우리가 장애인 또는 사회에서 소외 받은 자들과 함께한다는 게 이런 개념이 아닐까 싶습니다. 같이 야구 경기를 볼 수 있게 기회를 주는 것, 돕는 것, 자신에게 나눌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나누어서라도 그렇게 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출처: 뉴스앤조이]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302152)